Camino de Santiago, day 4
Pamplona ~ Puente La Reina / 25km / 약 7시간 30분 소요
4일차 영상 보기 https://youtu.be/2xkcAxkMcE8
행복했던 이 날은 특별히 내 다이어리 전문을 기록해보고자 한다.
오늘은 엄마의 생일이었다.
못난 아들은 시차로 인해 가족들보다 뒤늦게 축하했다.
함께 있어드리지 못한 점이 더욱 아쉬웠다.
이 길을 걸으며 엄빠의 사랑을 새삼 다시 느끼고 있다.
육아라는 길을 묵묵히 걸으셨던 두 분에게 경의를 표한다.
그만두고 싶고 멈추고 싶을때도 있으셨겠지만,
형과 나와 함께 해주셨다. 그라시아스 !
이제 어느정도 같이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이 눈에 익는다.
속도는 다르지만, 쉴 때 걸을 때 계속해서 만나고 있기에 더욱 반갑다.
3일밖에 되지 않았지만 벌써 길에서 정이 들어버렸다.
지난밤 숙소가 나만 더운 줄 알았는데 몸 좋은 형은 너무 더워 5시에 출발했다고 했다.
숙소에 도착해보니 기타 치며 놀고 있었다. 우리가 도착하니 환하게 웃으며 인사해준다.
첫날 일정을 마치고 론세스에서 함께 저녁을 먹었던 파리 할모니는(할머니라고 썼구나..)
오늘 아침부터 만나더니 숙소에서도 만났다. 제일 반가운 얼굴이었다.
또 파란 옷을 입고, 찬물로 샤워 하라며 멋진 수염을 넘기는 아저씨.
해바라기를 함께 바라보던 스페인 아줌마.
더위를 먹어 길가에 누워 열을 식히던 어린소녀.
일정이 끝나면 항상 노트북으로 무언가 하는 맨날 빨간 티만 입길래 옷 없는 줄 알았는데
오늘은 오렌지 티를 입은 청년.
아, 그리고 오늘은 한국에서 오신 70대 부부와 딸과 아들이 기억에 남는다.
잠깐이지만 이야기를 나눈 할아버지의 나이는 77세였다.
손주와 함께 오르막을 거뜬히 오르셨다. 그리고는 느지막히 오고 있는 할머니를
보채지 않고 묵묵히 기다리고 계셨다.
우리가 아침에 밥을 해 먹고 출발하느라 이 분들의 출발을 못 봤는데
"시수르"언덕에 오르기 전 만날 수 있어서 반가웠다.
첫날이셨고, 해보는 거에 의미를 두신다고 하는 말씀에서
속으로만 '나도 할아버지 같은 어른이 될래요' 했다.
그리고 오늘 걸은 25lm는 내가 3년간 몸 담았던 직장까지의 출근 거리와 비슷했다.
직장동료이자 광주의 엄마 같은 마마와 자연스레 연락하니, 함께했던 팀이 생각났다.
마마는 한국도 지금은 무더위에 힘들어하고 있다고 전해주었다.
내가 지난해 그 직장에 남아서 인사이동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같이 더위를 보내고
일을 하고 있을까? 생각했다.
작년의 나의 선택으로 나는 그 팀원들과 다른 여름을 보내고 있다.
달라진 길에 조금 어색하기도 하고, 낯설지만 그들의 뜨거운 여름을 여기서도 응원한다.
일정을 마무리 한 뒤 어김없이 샤워를 하고 빨래를 했다.
한 여름에도 한국에서는 보일러를 켜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는 '나'이지만,
여기서는 무조건 물은 차.가.워.야.한.다.
그런 나에게 처음으로 시련이 찾아왔다.
알베르게에 샤워실에 들어가 물을 틀고 손으로 온도를 체크하다 손이 델 뻔했다.
'어떻게 뜨거운 물이 나오지?' 이러기도 쉽지 않은데 하며 오른쪽으로 갈 수 있는 만큼
힘껏 꼭지를 돌리고 다시 틀었다. 찬물은 바라지도 않고 미지근한 물을 바라며
중간에 두고 틀어도 똑같았다. 물은 매우 뜨거웠고 나는 좌절했다.
삼계탕 먹는 상상을 하며 그렇게 삼게탕이 되었다. 아니, 닭보다는 수육이라 해야 할까?
그렇게 수육이 되면서 이 빌어먹을 알베르게 이름을 한번 더 생각했다.(공립 pedres Reparadores이다)
샤워를 끝내고 밖으로 나오는데 어라? 시원하다. ㅋㅋㅋ
뜨거운 물로 샤워를 마치고 나오니 더웠던 바깥의 공기가 차갑게.. 는 아니고 시원하게 느껴졌다.
'이 알베르게 노린건가?' 하며 전보다 시원해진 38'c의 온도를 즐기는데
우리의 찜작가는 시원한 물로 샤워를 하고 나왔다고 했다.
결국 복불복 이었던 것이다. ;;;
작심 3일을 제일 잘하는 나다. 369게임도 좋아하고 잘한다.
20대에 벌써 직장도 2번이나 그만뒀다. 첫 직장은 6개월가량 하고 그만둔다 하고 1달 더 일했다.
두 번째 직장도 3년 하고 1달 더해 37개월을 일했다. (그러고 보니, 1달은 덤인 듯..)
그런 나에게도 까미노의 3일차는 매우 혼란스러웠다. 특별한 이유는 없지만 부정적인 생각이 들었다.
여기저기 몸도 아팠고, 그런 몸이 맘에 안 들기도 하고, 덥고 하면서 '이걸 왜 하는 거지?' 했다.
그래도 덤이라 생각하며 하루를 더 해봤다. 그게 바로 오늘.
무거운 짐을 진 어깨도, 땀 범벅인 골반도, 안 좋았던 무릎도, 발바닥, 발가락 등 하체 전반적으로도
적응이 된 건지 괜찮았다. 아니 적응이라기 보단 내 몸은 포기한 것 같기도 했다.
그래 네 맘대로 하라며 몸에서 포기한 것이다. 적응이라는 표현도 있겠지만 포기가 좋겠다 싶었다.
800km가 끝나고 다시 한국에 들어오고 현실을 살다 보면 내 몸은 다시 아프고 힘들 테니까
적응이라는 표현은 사치이다.
열심히 걸었던 그날들 3일째까지 힘들 다고 생각하기는 했는데,
이렇게 다시 보니 정말 힘들어 했던 것 같다.
역시 몸이 적응하고 몸이 올라오는 시기는 분명 있는 것 같다.
지금도 산티아고 순례길을, 아니면 또 다른 길을 혹은 무슨 일을 준비하는 모든 이들에게
내 몸과 마음이 적응할 시간을 천천히 주었으면 좋겠다.
"여행을 하다보면 거듭남의 행위와 관련된 매우 실제적인 경험을 하게 되지요. 당신은 완전히 새로운 상황에 처한 겁니다. 하루는 예전보다 느리게 지나가고, 길에서 만나는 낯선 사람들이 하는 말을 대부분 알아듣지 못합니다. 어머니 배 속에서 갓 나온 아기처럼 말이죠. 갓난아기처럼 주위의 것들에 훨씬 더 많은 중요성을 부여하게 되지요. 그래야만 살아남을 수 있으니까요. 사람들과도 더욱 가까워지게 되지요.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도움을 받을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신들이 베푸는 아주 작은 호의조차 몹시 기쁘게 받아들이죠. 마치 남은 생애 내내 그걸 기억하기라도 할 것처럼 말입니다."
파울로 코엘료 의 [순례자 O Diario de um mago] p.50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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