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길]수다쟁이 털보와 찜작가의 부엔까미노 2일차 :)
Camino de Santiago, day 2
Roncevaux ~ Larrasona / 25km / 약 11시간 소요
죽다 살아난 우리는 어제 체크인 하며 주문한 아침까지 해결하려고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사람들이 6시~7시 이전에 출발하는지 잘 몰랐다.
그만큼 무모하게 우리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다. 겁도 없이 말이다.
아침을 조금 걷고, 다음 마을에서 먹을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도 맞다.
혹시 산티아고 순례길을 준비하시는 분, 내일모레 걷고자 하는 분들은
출발하는 마을에서 다음 마을이 5~10km 이내라면 걷다가 먹는 것도 한 방법임을 전한다.
(꼭 정답은 아닐 수 있다. 시기나, 현지 사정에 따라 아닌 경우도 있겠으니 한발.. 빼면)
어찌 됐건, 어제저녁 식사를 한 곳으로 가서 7시쯤 아침을 먹었다.
우리는 짐 정리를 하고, 배낭은 숙소에 두고 식당으로 향했다.
간단한 방과 요플레 그리고 주스를 먹으면서 간단히 오늘의 일정에 대해 이야기했다.
다시 숙소로 돌아와, 배낭을 가지고 출발했다. 8시 즈음이었다.
남들은 다 두 번째, 세 번째 마을에도 도착하는 시간이었다. ㅋㅋㅋㅋ
우리는 사람이 없는 순례길을 걸으며, 다들 어디 갔냐 했다.
멍ㅊ..
그리고 어제 힘들었던 것보다는 가벼운 몸에 기분이 좋아져 연신 셔터를 눌렀다.
숙소에서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산티아고까지 790km 남은 표지판을 만났다.
이때만 해도, 790km는 감이 오지 않았다. 그냥 '산티아고'라는 표지판이 반가웠다.
셀카도 찍고, 열심히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약 3시간가량 걷고 나서 Espinal이라는 마을에 도착했을 때 우리는 점심을 먹기로 했다.
준비하던 중 마을 초입에 있는 식당은 건너 띄는 편이 좋다는 글을 본 적이 있었다.
그래서 머리로는 건너뛰려고 했지만, 이미 내 발은 그 식당 테라스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힘도 들었고, 무엇보다 매우 더웠다. 그래서 우리는 배낭을 야외에 두고 다시 안쪽으로 들어갔다.
들어갔는데 이게 무슨 일.. 에어컨이 틀어져 있는 식당이었다.
우리는 천국이 이곳이며, 여기서 우리의 순례길이 끝나도 조.. 은건 아니었고,
그냥 짱이었다.
누가 초입의 식당을 지나치라고 했던가 ~
이 글을 보고 계신 분들에게 감히 추천드립니다!
Espinal의 마을에 도착하실 때 나오는 첫 번째 바!
좋아요 ~
우리는 콜라와 주스를 한잔씩 시켰고, 또띠야와 보카딜로 하나씩 시켜 주린 배를 채웠다.
열심히 걸었고, 많이 더워서 그런지 입맛이 별로 였지만 콜라 한 모금 먹으니
식욕이 돋았고 허겁지겁 먹었다. 콜라는 어제 맛보았던 오리 손 산장의 콜라 보다에는
살짝 못 미치는 시원함이었다.
우리는 식사를 마치고 충분한 휴식을 하다가 밖으로 나왔다.
밖으로 나오는데 천천히 오시는 한 중년 남성 2명을 만날 수 있었다.
한 명은 한국에서 오신 분이었다. 아저씨는 한국 사람을 처음 만난다며 반가워하셨다.
그러면서 영국 맨체스터에서 온 자신의 친구를 소개해줬다. 같이 맥주 마시면서 친해졌다고 한다.
반가운 나머지 잠깐의 이야기를 나누고 우리는 우리의 목적지인 주비리에서 오늘 저녁에
한잔 하자는 약속을 하고 헤어졌다. 아저씨는 조금 더 쉬고 오신다고 하셨다.
든든한 배를 가지고 우리는 걸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음악도 한 번씩 들으면서, 우리가 보내고 있는 아름다운 시간이 꿈만 같다며
감탄하고 감사해했다.
그렇게 감사한 마음은 얼마 지나지 않았다.
점심을 먹은 마을을 출발한 뒤 우리는 우리의 페이스를 잃었다.
그저 계속해서 걸었다. 쉼도 없이 우리는 할 수 있다고 여기며 걸었다.
덕분에 꽤나 많은 거리를 왔지만 우리의 체력은 점점 떨어져 갔다.
오리손 산장에서의 콜라를 떠올리며 한 모금 먹고 싶다.. 하며
물도 다 떨어진 애꿎은 텀블러만 뚜껑을 열었다 닫았다. 했다.
사실, 물이 다 떨어진 것은 나의 오만에서였다.
목이 적당히 마른 시점이었는데 나는 막연히 물을 마실 수 있는 곳에 금방이라도
닿을 것이라 찜작가에게 말을 했다. 찜작가는 아끼자고 했지만,
금방 나올 것이라 하며 물을 마셨다.
그리고 잠시 쉬면서 팔과 목에도 물을 끼얹는 만행을 저질렀다.
'먹지 말고 피부에 양보하세요'의 광고 문구가 떠올랐다.
텀블러에 물이 다 떨어지고 나니 우리의 멘탈은 급격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충분히 더운 것도 맞았지만, 우리는 외적인 영향보다는 멘탈이 흔들리며 약해졌다.
'이러다 쓰러지면 어쩌지, 너무 덥다. 못 걷겠다'등의 속마음을 서로에게 이야기했다.
한 명이 이야기 하면, 다른 한명이 '괜찮을 거야, 금방 마을이 나올 거야'라고
아무것도 모른 채 서로를 위로했다.
결국 우리는 잠시 나무 그늘에 앉아 쉬었다 가기로 했다.
시간은 약 3시 30분 정도, 점심을 먹고 출발한 지 또 세 시간 정도가 지났을 때였다.
다시 한번 쉬면서 체력을 회복하고 우리의 약해진 정신상태를 다잡았다.
그렇게 한 30분 걸었을까 산길이 끝나고 도로를 건너니 아주 자그마한 푸드트럭이 보였다.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고 환하게 웃었다.
살았다는 안도이기 전에 잘 버텨줘서 감사하다는 의미였지 싶다.
그렇게 조금 쉬다 보니, 한국 아저씨와 맨체스터 아저씨도 만났다.
두 분의 아저씨도 뒤에서 제법 힘들었던 모습이었다. 우리만 힘든 건 아니었다.
그렇게 이야기를 또 나눈 뒤 점심과 마찬가지로 우리 먼저 출발하기로 했다.
남은 거리는 약 3km 정도였던 것 같다.
매우 뜨거운 날씨로 인해 우리는 점차 말을 잃어갔고,
힘이 다 빠진 파이팅만을 연신 외쳐댔다.
40분 정도 걸었을까 나무 틈 사이로 마을이 보이기 시작했다.
무조건 'Zubiri'였다. 나는 찜작가에게 마을이 보인다고 말했다.
그리고 약 15분가량 더 걷고 나니, 마을 표지판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감격에 겨워 사진을 찍자고 했다.
찜작가는 이미 녹초가 되어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겨우 마을에 도착하였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위에서는 분명히 라라소냐까지 갔다고 했는데,
주비리?
사실, 우리는 애초에 주비리에 머물고자 했다.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을 거라 생각했고
따로 예약하지 않아도 될 거라 우리는 생각했다.
예약을 하는 방법도 알지 못했고, 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후반부에 들어서는 예약도 함^^)
쨌든 다시 돌아와 우리는 주비리에 있는 공립 알베르게로 향했다.
마을에 들어섰는데 사람이 별로 없어 보였다.
마을은 조용했고 우리는 순례자들이 많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도착한 공립 알베르게, 우리는 적잖이 당황했다.
알베르게가 있어야 하는 곳은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덕분에 순례자 사무소에서 나누어준 알베르게 정보에 따른 주비리의 베드수는 약 40개가 날아간 셈이다.
우리는 얼른이라도 씻고 싶었기 때문에 다른 알베르게로 향했다. 그런데 가는 곳마다 이미 방이 다 찼다고
하는 것이었다. 등에서는 땀이 흘렀다. 이 땀은 플릭스 버스에서의 땀과 비슷한 땀이었다.
한 알베르게에 들어가니 화려한 셔츠를 입고 계신 아주머니를 만날 수 있었다.
이 분은 우리를 보더니, 예약을 했는지 물었다.
우리는 당연, 하지 않았다고 당당하게 이야기한 뒤 침대가 있는지 물었다.
아주머니 또한 당당하게 없다고 했다.
세상이 무너질 듯한 표정을 지으며 잠을 잘 수 없냐고 다시 한번 물어보니 불쌍해 보였는지
여기저기 전화를 걸어 주셨다.
그러나 전화를 거는 곳마다 방이 이미 다 찼다는 대답뿐, 우리의 침대는 주비리에 없었다.
결국 아주머니는 마을을 하나 더 가는 편이 어떠냐고 물어보셨다.
나 또한 이미 체력이 방전되어 있었고, 찜 작가를 보는 동시에 그럴 수 없다 라고 했다.
우리의 몰골을 보시더니 아주머니는 바로 이해를 하신 듯 보였다.
그러고는 택시를 타고 가면 금방이라고 안내해주셨다.
주비리에는 어쩔 수 없이 숙소가 없으니, 다음 마을로 가야 한다라고 하셨다.
그러고는 라라소냐에 일단 침대가 있는지부터 물어보셨다.
다행히 그곳에는 아직 베드가 있다는 대답이 수화기 너머로 들렸고
우리는 고민했다.
예약을 한 뒤 한 시간에서 두 시간 정도 걸어갈 것인지 아니면 택시를 타고 갈 것인지
잠시 고민한 뒤 우리는 순례길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교통수단을 이용했다.
아주머니에게 택시를 타고 간다고 하니, 친절한 아주머니는 택시까지 직접 불러주셨다.
우리는 감사한 아주머니에게 한국에서 가져온 전통 마그넷을 드리면서 같이 사진을 찍자고 했다.
인사를 하고 나서 우리는 택시를 기다렸고, 금방 도착한 택시는 더 금방 라라 소냐에 우리를 내려줬다.
택시를 탄 것이 잘못한 일도 아닌데 우리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라라소냐에 도착한 우리는 체크인을 하고, 7시면 문이 닫히는 알베르게 앞 작은 구멍가게에 가서
내일 아침 및 간식을 조금 구매했다.
그리고 저녁은 알베르게에서 제공하는 순례자 메뉴를 신청하여 먹었다.
숙소에 계시는 아저씨가 직접 요리를 하시고 서빙까지 도맡아 하셨다.
식전 빵과 함께 수프가 나왔다. 사진에 보이는 수프인데, 어 그냥 따뜻하니 너무 좋았다.
행복 그 자체,
나는 후추를 쳐서 내 입맛에 맞게 먹으니 더 좋았다.
메인? 요리로는 토마토와 함께 돼지고기가 나왔다. 부드러우니 참 맛있었다.
요고는 토마토와 고기를 한 번에 먹으니 더 맛이 좋았다.
그리고 나온 디저트, 생크림과 캐러멜 시럽이 둘러싸여 있던 푸딩? 케이크? 사실 잘 모른다.
근데 생크림까지 쓱쓱 묻혀서 먹으니 맛이 참 좋았다.
함께 식사를 하던 분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는데 대부분의 유럽 사람들은
왜 이렇게 순례길에 한국 사람들이 많은지 이유를 물어보았다.
일단, 내가 알게 된 경험으로 이야기를 했고 유명한 이유도 말해주었다.
파울로 코엘료가 쓴 "순례자"라는 책이 한국에서 유명했고,
이를 통해 순례길을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많은 사람들이 꼭 걸어보고 싶은 길로 각자의 마음속에 저장을 해두었고,
최근에는 방송매체에서 많이 다루어지면서 사람들 마음속에 있던 것들이
꿈틀거리며 실천하게 만들었다 라고 했다.
물론 내 이야기였다. ㅋㅋㅋㅋㅋㅋㅋㅋ..
그렇게 맛있고 즐거운 식사시간을 마치고 올라와 개인 정비를 하였다.
빨래도 걷고, 일기도 썼다.
그리고 우리는 오늘의 우리의 실수를 공유하며, 내일은 그러지 말자고 했다.
일단 첫 번째로 우리의 출발시간이 매우 늦다 라는 것에 동의하며
출발시간을 7시로 당기기로 했다.
과연 우리는 제시간에 맞춰서 출발할 수 있을까?
그리고 내일 우리는 괜찮을까?
어두워진 방 안에서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가 잠을 쉽게 이루지 못하진 않고
눕자마자 나는 코를 골기 시작했다.
라라소냐 구멍가게에서 만난,
내가 쓴 것 아닌 누군가가 남기고 간 메시지를 전하며,
2일 차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