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잣까 여행/2019순례길

[산티아고 순례길]수다쟁이 털보와 찜작가의 부엔까미노 1일차 :)

수다쟁이 임잣까 2019. 10. 5. 14:00

Camino de Santiago, day 1 

St.Jean-Pied-de-Port ~ Roncevaux / 27.1km / 약 11시간 소요

 

 

드디어 순례길 1일 차 아침이 밝았다. 

우리는 5시 30분쯤 기상하여 출발 준비를 했고, 짐을 정리해 6시쯤 부엌으로 나왔다. 

부엌에는 알베르게에서 제공하는 음식들이 놓여 있었다. 

나는 빵을 집어, 버터와 잼을 바르고 차를 우려내어 몸을 따습게 하였다. 

추운 날씨는 아니었지만, 괜스레 따뜻한 차를 마시고 싶었다. 

따뜻한 차와, 버터 잼 듬뿍

아침식사를 마치고 30분쯤 식사하는 친구들에게 먼저 나간다는 눈인사를 하고 나왔다. 

제법 밝아진 시간이어서 후레시를 켜지 않아도 됐다. 

그런데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알 수 없었다. 

사실 순례자 사무소에서 55번 알베르게로 오기 전 우측에 오르막길이 하나 있었다. 

나는 사람들이 55번에서 많이 머물기도 하고, 해서 시작 지점인 줄 알았다. 

그래서 오르막길을 가려고 하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순례자들이 한 명도 안 보였다. 

불안했던 나와 하찜은 핸드폰 어플을 켜서 어느 방향인지 보려고 했다. 

하나 지금 생각해보면 부엔 까미노 어플을 3일 차 정도까지는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다...

 

우리 어디로 가야하죠?
지도를 본다고 방향이 나오나 ~

결국 어찌해야 하나 갈팡질팡 하고 있을 무렵, 순례자 한 명이 "부엔 까미노" 하며 우리를 지나갔다. 

방향은, 우리가 생각했던 정 반대 방향이었고 순례자 사무소 쪽을 지나 마을 성당을 지나갔다. 

혹시라도 또 길을 잃을까 재빠른 그 청년을 열심히 뒤쫓았지만 그 청년은 금방 사라지고 말았다. 

그래도 우리는 노란 화살표를 만나게 되어 이제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다 싶었다. 

 

순례객들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한다

순례길 초반 우리는 컨디션이 매우 좋았다. 날씨도 선선하니 좋았고, 앞으로의 순례길 여정이

기대되는 순간들이었다. 곳곳에 보이는 좋은 문구들을 보며 '아, 행복하다'를 연신 외치고 있었다. 

행복함도 잠시, 우리는 이내 피레네 산맥을 맞이하게 되었다. 

huntto 마을을 지나, 오리 손으로 올라가는 길이 조금 힘들기 시작했다. 

*약 2.8km 구간이 계속 가파를 오르막길이라 보폭 조절이 필요함(이라고, 순례자 사무소에서 나누어준

안내문에 나와 있었다... 물론 끝나고 알았다^^)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는 동안 숨이 차 왔다. 

이곳에 오기 전 그래도 동네 뒷산을 오르며 연습한 나였는데, 하찜보다 더 힘들어했다. 

결국 내가 먼저 쉬자고 했다, 하찜은 아직 든든해 보였다. 

얼굴은 익어가고, 억지 미소는 계속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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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어가는 볼, 억지미소, keep going~

처음으로 만났던 양 떼 친구들, 

안녕 나도 양띠야 :) 

양 떼를 뒤로하고 열심히 오르막을 올라 드디어 "Orison"산장이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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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냥~

벽돌로 지어진 아름다운 숙소였다. 사실 이곳은 프랑스길의 마지막 프랑스 숙소였다. 이제 시작인 나에게 

이 숙소는 아름답지만, 그저 지나가야 하는 숙소였다. 우리는 이 숙소 맞은편에 있는 야외 테라스에 자리를

잡았고, 콜라를 주문했다. 순례길을 시작한 뒤 처음 먹는 콜라였다. 맛있었다. 

우리 앞에 펼쳐진 놀라운 산세는 우리의 힘들었던 몸과 마음을 채워주기에 충분했다. 

*사진에 보이는 금발의 여성은 이로부터 약 10일 후, 한쪽 팔 전체에 베드 버그가 물리게 된다. 

신발을 벗고, 양말까지 다 벗었다. 

우리의 발에 피레네 산맥의 좋은 공기를 주입시켰다. 

충분한 휴식을 한 뒤 우리는 다 해낸 듯 사진을 찍고 텀블러에 물을 다시 채운 뒤 출발했다.

 

너낌있는 오리손 알베

 

갈증엔 코*콜*
멋지고 맛있고

 

끝난 포즈지만, 3분의 1지점이라는 것

 

이제 우리의 목표는 약 10km 후에 있는 푸드트럭이었다. 

충분한 휴식을 한 탓인지 한동안 우리는 꽤 걸을만했다. 

속도를 알 수 없었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우리 앞에 펼쳐진 놀라운 자연은 우리의 모든 걱정을 한 번에 가져가 정상위에 둔 듯했다. 

이때다 싶어 나는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었고, 결코 사진 한 장에 이 멋진 모습이 나오지 못하는 것에

아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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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레네 멋지고, 하찜 컨디션 좋고

그렇게 피레네 산맥에 취하며 우리는 힘듬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다. 

시간이 2시간가량 지났을까, 

우리는 여전히 취해있었지만 자연 때문은 아니었다.

뜨거운 태양, 계속되는 오르막에 우리는 힘들어했다. 그리고 점점 허기가 지기도 했다. 

얼마 가량 왔는지, 남았는지를 알 수 없었기에 더욱 몸과 정신은 힘들어졌다.(앞서 말했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부엔 까미노 어플을 잘 사용하지 못함..)

힘들어하던 중 저기 멀리에 있는 무언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 무언가는 당연, 푸드트럭이었다. 

누가 이 높은 곳까지 매일 올라와 지나가는 순례자들의 허기와 갈증을 채워주는 거야! 

라고 속으로 감탄하며 빠르게 걸었다. 

푸드트럭에 도착하여 우리는 빠르게 콜라와 이온음료 & 바나나 계란 조합을 골랐다. 

연신 "와~"를 내뱉으며 행복하게 먹었다. 

 

오아시스=푸드트럭

그리고 아저씨께서는 조금만 올라간 뒤부터는 내리막이 나온다고 우리에게 알려줬다. 

드디어 내리막이라니! 그리고 이제 정상이라니! 

나는 다시 한번 신발끈을 묶고, 배낭을 메었다. 

힘들어하는 나와는 상반되게 하찜 작가는 여전히 멀쩡했다. 

심지어는 행복해 보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녀는 안 쓰던 근육을 쓰면 알이 배긴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나는 하찜의 행복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 말을 아꼈다. 

우리는 화살표를 따라 걸었다. 오른쪽으로 가라고 하면 오른쪽으로 갔고, 왼쪽으로 가라고 하면 왼쪽으로 갔다. 

우리에게 노란 화살표는 이제 한 달 동안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었다. 

약 5일? 차에 만났던 고등학교 선생님이던 이 모 씨는 "우리네 인생에도 화살표가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조금 느끼한 말도 했다. 

 

우리네 삶에도 도입이 시급함

그렇게 내가 발을 구르고 있는지, 땅이 나의 발을 밀고 있는 건지 모르는 상황이 되었을 때쯤 

우리는 마을에 도착했다. 한데 뭔가 좀 이상했다. 분명 마을을 바라보고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한 주차장을 보며 마을에 도착했다. 우리는 그때까지 잘못되었는지 몰랐지만 며칠 뒤 한 털보형에게 

그곳이 잘못된 길이었다고 들었다. 정상적인 루트는 론세스바예스 마을을 보면서 마을에 들어오지만,

잘못 내려온 사람들은 주차장부터 보인다고 했다. 

우리도 결국 잘못된 길로 왔다. 

그래도 도착했다.

알베르게에 도착한 것에 감사했다. 우리가 출발한 지 약 11시간이 지난 오후 5시가 넘어서야 우리는 도착했다.

하찜과 나는 그래도 살아 도착한 것에 감사하며 하이파이브를 했다. 


체크인을 마치고 우리의 자리로 갔다. 워낙에 넓고 쾌적했다. 

 

쾌적한 시설을 자랑한 알베르게 :)

우리는 얼른 씻고 나서 잠시 휴식을 가졌다.  

론세스바예스 알베르게에는 취사시설이 따로 없어 저녁을 사 먹어야 했다. 

그래서 알베르게에서 저녁을 신청한 뒤 시간에 맞춰 저녁을 먹으러 갔다. 

프랑스에서 온 아주머니, 오스트리아에서 온 아저씨와 같은 테이블에 앉아 식사를 함께했다. 

우리는 간단하게 힘들었던 오늘을 뒤돌아 보며 연신 건배를 했고, 대화를 나누었다. 

 

밥, 와인 다 먹고 한 방

선생님으로 일을 하며, 이 길 위에 또 다른 삶을 생각하며 걷는다는 오스트리아 아저씨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그는 걸으며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들을 비우고 싶다고 했다. 무언가를 채우고 싶다고 했는데, 

더 자세히 묻지는 못했다. 아저씨가 채우려고 했던 것들은 어떤 것들일까? 

그리고 약 3달이 지난 지금 아저씨는 잘 채우고 있을까 궁금해진다. 



프랑스 아주머니는 이 날 이후 일주일 정도 계속해서 만났기 때문에 또 등장할 예정, 

우리는 식사를 마치고 다시 숙소로 돌아와 일기를 쓰고, 빨래를 했다. 

그리고 내일 이어질 우리의 여정을 조금 돌아본 뒤 지쳐 쓰러졌다. 

내일 우리는 괜찮을까? 걱정할 새도 없이 우리는 잠에 들었다. 

 

다음은 첫날 찍은 영상의 모음집.mp4